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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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MA, CHAPTER THREE] 작품소개: 이불

  • 미술관 로비, 1~7전시실

주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

이불(Lee Bul, 1964-)은 영화, 문학, 근대건축,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어 퍼포먼스, 영상, 설치, 회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미술의 형식적, 서사적 확장을 이뤄왔습니다. 특히 신체나 건축물 등 개인과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그에 대한 좌절을 작품에 표현합니다.

 

 

《APMA, CHAPTER THREE》 에서는 이불의 조각 네 점을 소개합니다. 2000년작 <사이보그 W7>부터 2010년작 <스턴바우 No. 29>까지 2000년대 초반 작가의 작업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불, <사이보그 W7>, 2000, 실리콘, 폴리우레탄 충전재, 피그먼트

 

작가는 활동 초기인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몸을 사용한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의 몸을 향한 사회적 편견을 전복하고자 시도하였고, 점차 인체 전반으로 작품의 소재를 확장하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일본 만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사이보그> 시리즈를 제작하며 기술의 발전을 통해 완벽함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탐구하였습니다. <사이보그 W7>은 그중 일곱 번째 작품으로, 여성의 몸과 기계 장치가 결합된 혼성체입니다. 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이 불멸의 존재는 당당한 전사 같은 자태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머리, 팔, 다리 일부를 잃어버린 불완전한 형태에서 비롯되는 상실감은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드러냅니다.

 

이불, <크러쉬>, 2000, 크리스털 구슬, 유리구슬, 니켈 크롬 철사

 

<크러쉬>는 크리스털 구슬과 유리구슬을 꿰어 제작한 작품으로, 역시 이상화된 여성 신체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유리, 크리스털, 시퀸(sequin) 등 반짝이는 재료의 사용은 작가의 어린시절 부모님이 구슬을 꿰는 가내수공업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던 기억과 연관이 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표면은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을 듯한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동시에 껍데기만 남겨진 듯한 형상은 언제든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아름다움과 불안함을 모두 안고있는 모호한 상태의 신체를 통해 작가는 조건과 한계와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이불, <브루노 타우트에 대하여>, 2006, 크리스털, 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구리, PVC, 강철

 

이불, <스턴바우 No. 29>, 2010, 크리스털, 유리, 아크릴, 니켈 크롬 철사,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골조

 

<브루노 타우트에 대하여>와 <스턴바우 No. 29>는 2005년 시작된 <나의 거대 서사> 연작에 속합니다. 연작에 포함되는 설치, 드로잉, 조각들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작가의 문학, 철학, 건축적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된 두 작품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표현주의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책 <알프스 건축>(1919)에 수록된 그의 드로잉과 글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독일제국의 붕괴 전후로 작업한 이 책에서 타우트는 전쟁에 자원을 소비하는 대신 알프스 산맥에서 뻗어나가는 크리스탈과 유리로 이루어진 눈부신 도시를 건축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건축을 통해 연대를 형성하면 무질서가 만연한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바람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불은 타우트가 실현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유토피아적 건축을 제안한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작품의 주제로 선정하였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완벽함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샹들리에를 연상시키는 <브루노 타우트에 대하여>는 마치 도시 건축 모델이나 타우트의 드로잉 중 하나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스턴바우 No. 29>에서 ‘스턴바우’는 ‘별자리’라는 뜻을 가진 동시에 브루노 타우트가 표방하였던 극단적 이상주의를 상징하였던 단어로 유리 건물들이 햇빛을 반사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또한 작품의 나선형 골조는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이자 건축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실현되지 못한 건축 모델 <제3 인터내셔널 기념탑>(1919-1920)의 형태와도 닮아있습니다.

 

두 작품의 건축적 미감에 더해진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을 주는 강박적인 화려함은 타우트의 과열된 낙관주의를 향한 풍자적인 오마주로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이불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여성성에 대해 논하는 퍼포먼스와 조각 작품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서울시립미술관(2021, 서울), 마네지 중앙전시관(2020, 상트페테르부르크),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2018, 베를린), 헤이워드 갤러리(2018, 런던), 팔레 드 도쿄(2015, 파리), 뉴욕 현대미술관(1997, 뉴욕)을 포함 세계 최정상급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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