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품번호 No. 19, 전시작품번호 No. 46
오늘날 동시대 미술에서 물질은 단순히 작품을 이루는 재료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기억을 조직하는 중요한 언어로 작동합니다. 캐롤 보브(Carol Bove)와 이강승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물질의 감각과 의미를 재구성해온 작가들입니다.
보브는 강철이라는 단단하고 산업적인 재료를 점토나 천처럼 유연하게 다루며, 조각을 둘러싼 무게와 형태의 통념을 흔듭니다. 반면 이강승은 자수, 태피스트리, 도자기, 드로잉 등 섬세한 수공예적 매체를 통해 지워진 역사와 주변화된 삶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옵니다. 두 작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물질을 다루지만, 그들의 작업은 공통적으로 물질이 감각과 기억, 인식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보브의 조각이 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전복하며 형식의 가능성을 확당한다면, 이강승의 작업은 물질에 축적된 시간과 노동을 통해 역사 서술의 공백을 다시 사유하게 합니다.
캐롤 보브와 이강승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전시 도록을 함께 소개해드리니, 관람 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캐롤 보브가 전복하는 것은 '재료에 대한 감각적 통념'입니다. 강철은 보통 단단함, 무게, 산업성, 구조적 견고함을 상징하지만, 보브는 그것을 구기고, 휘고, 압축하고, 색을 입혀 마치 점토나 천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작가의 조각은 강한 물질을 부드럽게 보이게 하는 형식적·조형적 전복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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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 Bove:
Collage Sculp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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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6. - 2022.1.9.
Nasher Sculptur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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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조각 전문 미술관인 나셔 스컬프쳐 센터에서 열린 이 전시는 강철 조각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주요 미술관 전시입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콜라주'는 종이나 이미지를 붙이는 평면적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상태의 강철을 조합하는 조각적 방식을 말합니다. 보브는 녹슨 고철이나 산업용 강철 빔, 매끈하게 도장된 컬러 튜브, 압착되거나 구겨진 금속판 등을 용접하고 볼트로 연결함으로써 강철이라는 재료가 지닌 물리적·시각적 가능성을 새롭게 드러냅니다. 작가의 작업은 강철, 산업재료, 추상 조각, 대형 조각의 전통을 참조하면서도, 이를 부드러운 곡선과 선명한 색채, 구겨진 듯한 형태로 비틀어냅니다. 그 결과 작품은 실제로는 무겁고 견고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시각적으로는 천이나 점토처럼 휘어지고 접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을 통해 녹슨 철의 거친 표면과 선명한 색면이 함께 배치되어 산업 재료의 무게감과 조각의 역사적 참조를 뒤섞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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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of Venice
: Carol Bove, Teresa Hubbard/Alexander Birc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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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13. - 2017.11.26.
la Biennale di Vene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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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관에서 열린 《Women of Venice》는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부재를 출발점으로 삼아, 국가관 제도와 미술사적 기억의 구조를 재검토한 전시입니다. 생전 스위스관 출품을 거부했던 자코메티와 1956년 프랑스관에 출품된 그의 〈베니스의 여인 Women of Venice〉은 이 전시의 핵심 참조점이 됩니다. 캐롤 보브가 강철과 색채, 수직적 구조물을 통해 자코메티의 조각적 유산을 추상적으로 재배치한 이 전시는 자코메티에 대한 단순한 헌정이 아니라, 미술사가 기억하는 이름과 지워버린 이름, 그리고 예술가를 국가적 정체성 안에 위치시키는 제도의 작동 방식을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강승이 전복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서술 방식'입니다. 그는 주류 역사에서 배제되거나 삭제된 개인, 특히 퀴어 역사와 기억을 드로잉, 자수, 태피스트리, 도자기, 오브제 등 느리고 신체적인 노동이 요구되는 매체로 다시 불러옵니다. 여기서 재료는 단순한 조형 실험의 대상이라기보다, 상실된 기억을 보존하고 애도하며 회복하는 매개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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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Seung Lee
: The Heart of A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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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25. - 2023.7.22.
Vincent Price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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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시인 사비에르 비야우루티아(Xavier Villaurrutia, 1903-1950)의 시에서 전시명을 따온 이 전시는 이강승의 작품 〈손의 심장〉을 통해 에이즈 관련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싱가포르 태생의 선구적인 안무가 고추산(GohChooSan, 1948-1987)의 삶을 다시 조명합니다. 전시는 광범위한 자료 조사와 협업을 바탕으로 탄생한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며, 개인적·공동체적 비극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고추산의 아카이브적 보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강승은 고추산의 삶을 조사하고 유족과 관련 인문들을 인터뷰하며, 그 과정에서 수집한 역사적 단서들을 드로잉, 자수, 설치, 영상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를 통해 역사에서 지워졌거나 흐릿하게 남은 관계들을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물질들을 사용합니다. 작가는 이미 사라진 삶, 충분히 기록되지 못한 관계, 에이즈 위기 속에서 끊어진 퀴어 공동체의 계보는 완전한 역사로 재구성되기 어렵다는 공백 자체를 드러내면서 물질적 흔적을 함께 배치합니다.
사진: 마리스 허친슨
© 캐롤 보브 스튜디오 L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