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
《Sol LeWitt: Open Structure》전시의 중심에는 전시장의 벽을 가득 채운 벽화, '월 드로잉(Wall Drawing)'이 있습니다.
월 드로잉은 르윗이 40여 년간 이어온 작업의 중심이자, 솔 르윗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작업입니다.

© Courtesy of LeWitt Estate and Amorepacific Museum of Art, Photo: Kyoungtae Kim
솔 르윗의 작업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지시문(instruction)입니다.
르윗은 선의 방향과 색, 도형의 배치를 글과 도식으로 정리했고, 실행자(draftsperson)가 이 지시문을 읽고 벽에 작품을 그립니다.
건축가가 직접 벽돌을 쌓지 않아도 건물을 그의 작품이라 부르듯, 르윗의 벽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르윗은 작가로 활동하기 전,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I. M. 페이(I. M. Pei)의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설계와 시공이 나뉜 건축의 방식은 훗날 그가 지시문으로 작업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Credit: Jack Mitchell / Getty Images
https://www.thoughtco.com/sol-lewitt-biography-4582474

건축가 I. M. 페이가 오클라호마시티 신도심 계획안 모형을 시 관계자에게 설명하는 모습, 1964년경
출처: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Harvard GSD) © The Oklahoman – USA TODAY NETWORK
https://www.gsd.harvard.edu/2024/05/i-m-pei-legacy-sandi-pei-calvin-tsao-paul-goldberger/
지시문은 작가의 손길과 구체적인 형태를 중심에 두던 작품의 개념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르윗의 벽화, 월 드로잉을 소장한다는 것은 벽이 아니라 지시문과 작가가 서명한 증명서를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시가 끝나면 월 드로잉은 페인트로 덮여지지만, 지시문이 남아 있으면 다른 장소에서 언제든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
르윗은 1968년 첫 작업 이후 1,350여 점의 월 드로잉을 구상했고, 지금도 이 지시문을 바탕으로 월 드로잉을 새롭게 제작합니다.

© Courtesy of LeWitt Estate and Amorepacific Museum of Art, Photo: Kyoungtae Kim
지시문의 성격은 작업마다 다릅니다. 수직선, 수평선, 대각선 등 선의 조합을 체계적으로 정해 둔 지시문이 있는가 하면,
선을 어디에 그을지 실행자에게 맡기는 지시문도 있습니다.
위치 드로잉(Location Drawing)과 같이 도형의 위치를 문장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료 역시 1968년 첫 벽화에 쓴 연필에서 크레용, 잉크 워시, 아크릴 물감으로 점차 넓어졌습니다.
르윗의 지시문은 벽의 크기와 공간의 조건, 실행자의 손을 거치며 매번 새로운 월 드로잉이 됩니다.

© Courtesy of LeWitt Estate and Amorepacific Museum of Art, Photo: Kyoungtae Kim
1996년작 <월드로잉 #104A (Wall Drawing #104A)>는 실행자의 선택이 작품에 드러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시문은 한 변이 약 300cm인 정사각형 안에 길이 약 10cm의 직선 1만 개를 무작위로 그리도록 지시합니다.
선의 위치는 실행자가 정하기 때문에, 같은 지시문이라도 설치할 때마다 다른 화면이 나타납니다.

© Courtesy of LeWitt Estate and Amorepacific Museum of Art, Photo: Kyoungtae Kim
이번 전시에서는 연필, 크레용, 잉크 워시,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월 드로잉 13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재단 관계자들과 국내 미술 전공자 23명으로 이루어진 APMA MAKERS가 르윗의 지시문에 따라 전시장의 벽화를 직접 제작했습니다.
이 월 드로잉들은 지시문이라는 언어가 공간 안에서 작품이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2026.09.30